(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가 벌써 10년이 되었군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선택지 중 하나인 ‘비영리’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오픈 컨텐츠와 호환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이겠고요. 저는 비영리가 무엇인가 기준에 대해 분쟁이 일어나기 쉽다는 부분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상황은 비영리 사용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 비영리 조건의 소설을 올린 웹 사이트가 광고를 부착하여 수입을 얻는 경우
- 혹은 그 사이트에서 모금을 받는 경우
- 비영리 자료를 책으로 엮어서 제작 비용만 받고 파는 경우
- 비영리 조건의 그림에서 일부분만 가공하여 소량 이용한 경우
이런 경우들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할만한 답은 없을 겁니다. 사람들마다 비영리에 대해 생각하는 기준이 모두 다르다면, 저작자는 허용해도 된다고 생각한 조건을 이용자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가장 근원이 되는 허가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cc-by-nc-3.0 라이선스에서는 다음과 같이 비영리 조건을 정의하고 있습니다(4b).
You may not exercise any of the rights granted to You in Section 3 above in any manner that is primarily intended for or directed toward commercial advantage or private monetary compensation. The exchange of the Work for other copyrighted works by means of digital file-sharing or otherwise shall not be considered to be intended for or directed toward commercial advantage or private monetary compensation, provided there is no payment of any monetary compensation in connection with the exchange of copyrighted works.
이 부분은 1.0 시절부터 변하지 않았고, 한국어로 된 cc-by-nc-2.0-kr 역시 거의 같은 내용을 가집니다.
귀하는 상업적인 이익 또는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이를 얻기 위한 방식으로 제3조에 의하여 귀하에게 부여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파일공유나 기타 방법에 의하여 저작물을 다른 저작물과 교환하는 것은, 저작물을 교환하는 것과 관련하여 금전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상업적인 이익 또는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을 주로 의도하였거나 이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첫 문장은 저작물로 돈을 벌지 말라는.. 애매한 내용이 전부입니다. 두번째 문장이 조금 뜬금없는데, 가령 P2P 같은 데서 비영리 저작물을 서로 주고받는 경우는 사용 제한에서 뺍니다. 이 문장이 있는 이유는 미국 냅스터 재판 시 이용자 간에 돈이 오가지 않아도 영리적 사용으로 인정한다는 판결이 났는데 CC의 비영리 조건에서 이를 명시적으로 허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약서에 나온 건 이게 전부입니다. 비영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는 없는 상황이죠. 사실 이건 법적으로도 애매한 문제인데, ‘명확한 영리’와 ‘명확한 비영리’ 사이에는 수많은 상황이 가능하며 이를 규정으로 정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국 저작권법의 fair use 항목에서도 같은 이유로 commercial을 정의하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영리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비영리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에서는 2008년~2009년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영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는 저작물을 만드는 크리에이터와 소비하는 유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결과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일부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고
비영리 저작물에 광고를 다는 행동은 비영리일까요? 저작물을 사용해서 수익을 얻는 행동이지만 이용자에게서 직접적인 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프는 사람들의 답변을 0에서 100 사이로 수치화하여 평균낸 것입니다.)
대부분의 응답자는 ‘웹 사이트에 광고를 다는 경우’ 영리적 사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광고 수익이 사이트 운영 비용 정도라고 해도 비슷했고요. 비영리 모임/재단 등에서 사용하는 경우 조금 퍼센트가 내려가긴 했지만, 여전히 상당수가 그건 영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결과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홈페이지의 설문조사와 같이 볼 경우 더 흥미로운데, 홈페이지 설문조사는 아무래도 오픈 컨텐츠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일반인’과의 생각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 대상 결과는 웹 사이트에 광고를 다는 게 영리적인가에 대해 각각 81%, 그 목적이 운영비 충당인 경우 68%의 이용자가 ‘확실히 영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CC 홈페이지에서 답변한 사람들은 웹 사이트 광고는 62%, 운영비 충당의 경우 36%의 사람들만이 ‘확실히 영리적’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비영리 자료를 단순히 광고만이 목적인 스팸 사이트에 사용하는 경우 일반인들은 대답에 큰 변화가 없었는데, CC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85%가 ‘확실한 영리적 사용’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한데, 일반인들은 스팸 블로그에 대해 잘 몰라서 차이가 없었던 것일지, 아니면 CC에 친숙한 사람은 이용 의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지 모르겠네요.
한편 CC에서는 ‘광고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도 나타났듯, CC를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이러한 간극이 있습니다.
사용 주체
저작물을 어떤 주체가 사용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흥미롭습니다. 사실 비영리의 정의가 그 사용 행동에만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개인이 사용하나 단체가 사용하나 관계가 없어야 할 것도 같죠.
먼저, 사용 주체가 영리적 성격을 가지는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회사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경우 영리적 사용이라는 견해가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비영리 단체, 교육적 목적일 경우 이 비율은 점차 낮아집니다. 저작자와 사용자 간의 견해 차이도 나타나는데, 교육 단체의 경우 사용자보다 저작자가 비영리로 판단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 사용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보입니다.
앞의 항목들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저작자보다 안전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높았었는데, 여기에서는 반대로 사용자에게서 ‘개인적 사용이니까 비교적 괜찮을 거다’는 성향이 나타납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개인적 사용의 경우 비영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지만, 저작자의 ‘경쟁자’나 ‘전문가’가 사용할 경우 영리적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결론
전반적으로 정리하면,
- 이용자가 그 저작물에 관련하여 금전을 얻는 경우 영리적이라는 응답이 높았고,
- 비영리/교육/공공 단체의 경우 영리 단체보다 비교적 비영리로 판단되었고,
-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사용하는 경우 비영리라는 응답이 높았습니다.
- 그리고 저작자와 사용자, 그리고 CC 라이선스에 잘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현재 CC에서는 라이선스 4.0의 NC 방향을 논의하는 중입니다. 몇 가지 흥미로운 제안들이 있는데,
- ‘비영리’(NonCommercial)라는 말을 ‘영리적 권리 보유’(Commercial Rights Reserved; CRR)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습니다. 비영리라는 용어는 이용자에게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고 금지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제약을 걸 수 있어 어감을 순화하자는 거죠.
- 영리적 사용 가능에 대한 기한을 붙이도록 하는 제안이 있습니다. 가령 CC-BY-CRR(exp-2017)-SA라고 하면 2017년이 지나면 CRR 조건이 사라지고 cc-by-sa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